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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안기수

코끼리 무덤 (with. 신재경)

by Y_YP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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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는 멸망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생명체들이 절멸했습니다.
허무하게 멸망한 세계에서, 신재경.
당신은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녹다 만 시체가 가득한 거리, 산 것이라곤 잡초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텅 빈 세상.
거처를 옮겨가며 통조림 따위를 주워다 연명하는 생활에, 오늘도 달라진 바는 없어요.
 
: 말마따나 오늘도,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세카
 
코끼리 무덤
 
w.@002D_TRPG
 
KPC 안기수 PC 신재경
 
 
어느 날 지구는 멸망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생명체들이 절멸했습니다.
 
하늘이 부쩍 흐렸던 어느 날.
 
모든 생명체는 돌연 각자의 타이밍에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호소하더니, 수 초 내로 그 몸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렇게, 불과 며칠에 걸쳐,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죽임당했습니다.
 
재난은 우리에게 징조도, 대처할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그러했듯이.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한 세계에서, 신재경.
 
당신은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왜 나만이 살아남았는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 어딘가에는 나 외의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진 않을지…….
 
대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되뇌며 당신은 홀로 이 1년을 버텨왔습니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는 땅과 길짐승 하나 나다니지 않는 텅 빈 세상.
 
거처를 옮겨가며 통조림 따위를 주워다 연명하는 생활에, 오늘도 달라진 바는 없습니다.
 
말마따나 오늘도,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똑똑
 
일과를 모두 마친 밤중, 누군가가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안기수:누구,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1년 만에 들어보는 사람의 목소리는, 당신의 친구.
 
안기수의 것과 똑 닮아있었습니다.
 
신재경, 당신의 친구였던 기수를 기억하나요?
 
▶: 신재경 이성 판정 (0/1d5)
 
신재경: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기억에 스치는 사내의 모습에 고민에 잠긴 채로 문을 바라본다.)
 
혼란스럽지만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이 목소리는 안기수의 목소리가 맞습니다.
 
그런데… …
 
▶: 신재경 지능 판정
 
신재경: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이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기수는 작년에…….
 
잠깐.
 
그러고 보니 왜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죠?
 
당신, 안기수의 최후를 제대로 본 적이 있습니까?
 
모두가 그렇게 되었으니 그도 멸했을거라 멋대로 단정 짓고 있었다면?
 
안기수:도와줘. 문 열어줘... 제발.
살고 싶어. 살게 해줘...
 
문밖의 소리는 끊일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할겁니까, 신재경
 
주변에는 여러 물건들이 보입니다.
 
: 얼마 전 새로 옮겨온 탓에, 집 안은 낯설고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비좁은 컨테이너 박스. 옆에는 살이 달린 창문이 하나 나 있습니다.
상자 몇 개, 담요가 올려진 매트리스, 그리고 집 안을 비추는 캠핑 랜턴 하나가 이 집 안의 유일한 가구입니다.
 
신재경:(창문으로 다가가 바깥을 확인할 수 있는지 살핀다.)
 
: 밖은 어둡고 안은 밝은 탓에, 얼비쳐서 외부의 풍경은 보이지 않습니다.
 
신재경:(문으로 다시 다가가서 입을 연다.)
... 내가 어떻게 믿어. 살아있는 것도 이상한데.
 
▶: 신재경 관찰력 판정
 
신재경:
관찰력
기준치: 40/20/8
굴림: 48
판정결과: 실패
 
: 문 아래 틈새로 지면과 맞닿아있는 발이 보입니다.
 
안기수:살고 싶어.
여긴 너무 어두워.
도와줘, 제발.
 
신재경:... 내가 믿을 수 있게 너라는 걸 증명해봐.
 
안기수:기억나는 게 없어.
눈 떠보니 나는 이곳에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다... 다 모르겠어.
 
신재경:... ...
너가 진짜 안기수였다면, ...
나한테 도와달라는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아, 나는.
뭐든 혼자 잘 하잖아. 안기수는.
나 귀찮게 하는 것도 잘해도, ... 이런 상황에서 도와달라는 얘기는 죽어도 안 하던데.
그게 안기수 아냐?
 
안기수:... 나는 모르겠어.
기억나는 게 없어.
아무것도 몰라. 전부 잊어버렸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신재경:... 정말 아무것도 몰라?
내가 뭐하는 앤지도 모르고?
 
안기수:도와줘. 도와줘...
제발.
 
신재경:... ... ...
(고민에 잠긴 낯으로 집안으로 돌아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상자를 살핀다.)
 
: 유랑 생활 중 모아온 식량이나 생필품 따위가 들어 있습니다.
 
▶: 신재경 관찰력 판정
 
신재경:
관찰력
기준치: 40/20/8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당신은 생필품들 사이에서 학생증을 발견합니다.
이건 당신의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누구의 것이죠?
 
▶: 신재경 지능 판정
 
신재경: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아, 이것은.
 
안기수:내가 미안해.
 
: 이 학생증은 안기수가 죽기 전에 당신의 손에 쥐어준 것입니다.
그렇다는 건 안기수는 역시 죽은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럼 저 밖에 있는 건 누구란 말입니까?
 
신재경:... 개자식.
(힘이 들어간 손을 떨다 학생증을 바닥에 내던지고서 한숨을 뱉는다. 유일한 빛인 랜턴을 바라본다.)
 
: 현재 이 방의, 아니, 이 근방의 유일한 광원입니다.
태양열 전지로 작동되며, 버튼으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끈다면 밖과 다름없이 어두워지겠지만요.
 
신재경:... ... ... (가만히 선 채로 문 너머를 눈에 담는다. 옅은 숨을 뱉으며 불을 꺼버린다.)
 
랜턴의 전원을 내리자, 집 안에는 완전한 어둠이 내리깔립니다.
 
동시에 문 너머에선 풀썩, 무언가가 쓰러진 듯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순간 당신은 깨닫습니다.
 
문밖과 안에는 차이점이 둘 있었습니다.
 
당신의 존재와 조명이라는.
 
문밖의 존재는 문을 열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 안이 밝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건가요?
 
오래 의문할 것도 없이 곧, 격통이 당신의 전신을 덮칩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꺼져가는 의식 속, 당신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다만 생각합니다.
 
지구 최후의 생존자의 말로가 이러하다니.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겨우 배를 채운 색채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이후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망한지 오래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죽어버렸으니까요.
 
 
 
 
 
 
 
 
 
: 신재경, 어떡할건가요?
문을 열 건가요?
당신은 모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신재경:... ... (흉내를 내도 하필 죽은 놈 흉내를 내고. 머리가 나쁜건지 운이 없는 건지.)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다.) ... ... (고맙다는 말은 속으로 삼켜두었다. 간만에 안기수 목소리 들려줘서.)
 
:
문을 두드립니다.
 
안기수:야.
 
신재경: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내던가... ... 성질머리 죽이고 다시 와. 개자식아.
 
안기수:야.
 
 
안기수의 목소리는 한참이나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알고 있잖습니까?
 
문밖의 저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안기수는 오래 전 죽었습니다.
 
다른 많은 생명들과 같이, 이 지구에 당신 혼자만을 남기곤.
 
 
 
 
신재경:실컷 봐. 너 뒤졌으니까 위에서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을 만큼 볼 수 있잖아.
직접 보지는 말자 우리. 나 심장 약해서 그런 거 보면 놀라.
내 맘 알지?
 
저것은 안기수가 아닌 게 맞습니까?
 
당신의 친구 기수가 아닌 게 맞습니까?
 
당신이 봤던 것이 전부 진실이 맞습니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듭니다.
 
드디어 들어오길 포기한 걸까요?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풀썩, 무언가가 쓰러진 듯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신재경:... ... 이해해줘서 고맙다. 안기수.
 
동이 트고 세상이 다시 밝아옵니다.
 
문을 열어볼까요?
 
물론 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신재경:(문을 열지 않는다.)
... ... 너 마지막 모습은 그래도 인간으로 기억해줄게.
 
어떤 기분인가요, 신재경.
 
세상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찾아와 네가 죽고, 모두가 죽고.
 
당신의 친구가 문을 두드렸는 사실이.
 
오늘도 당신, 그러니까 나만이 멀쩡히 오늘도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
 
집 안으로 어렴풋이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당신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면 거처를 옮길 때마다 다른 생존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안기수는 아닐 테지만요.